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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짐

 

2004년 7월, 해안GOP 투입을 며칠 남기지 않은 시점 나는 입대 1주년을 맞이했다.

나는 탄약고 야간 근무를 서고 있었다.

함께 근무서던 고참이 축하해줬다.

하늘의 별을 보며 군대에서 보낸 1년을 돌이켜봤다.

끔찍하게도 길었다. 1년이란 시간이 이렇게 길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똑같이 1년이 더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을때 뭔가 아찔한 막막함을 느꼈다.

어딘가 좁은 곳에 갇혀서 느끼는 폐소공포증처럼(그리고 실제로 갇혀있는거지만...)

가슴 속 한구석이 미칠듯이 답답했다.

나는 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족들이 보고 싶고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보고싶어 미치겠다" 라는 말은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니다.

경험해본 사람만이 안다.

 

상병은 해안GOP 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해안 철책을 지키는 일은 보통 쉬운일로 알고 있었다.

우리는 '이상한 나라'(1편 참고) 에서 탈출하여 해안으로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엇다.

우리는 대부분 해안에 있는 6개월 이상의 기간은 군생활이라 생각하지 않을 정도 였다.

 

하지만 좀 이상했던건 투입되기전 앞에 들어가있는 다른 부대에게 인수인계를 받으며 함께 근무를 설 때부터였다.

"이곳은 지옥이다. 모두 빨리 해안에서 철수하고 싶어한다."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여름, 우리는 이삿짐을 싸서 해안 소초로 이동했다.

이사 후에는 이삿짐만 풀어서 살면 되는건 아니었다.

사실 우리가 사는데 딱히 필요는 없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작업을 해야 했다.

낮에는 환경미화 작업을 하고, 밤에는 해안철책을 지켜야 했다.

일출을 보며 해안에서 철수를 하고 몇 시간 눈을 붙인 후에는 또 작업을 해야겠다.

간부들은 초반 한달만 꾹 참으면 편하게 지낼 수 있다고 했지만

우리는 여름 내내 피로에 찌들어서 생활해야 했다.

좀 쉴만하면 태풍이 왔고 피난을 하거나 뿌리뽑힌 철책을 보수해야했다.

 

여름이 끝나기가 무섭게 밤은 길어지고 추워졌다.

복장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따뜻하게 입을 수도 없었다.

고작 할 수 있는건 고참 눈치를 보며 옷깃을 세워 바람이라도 막아보는 것이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날은 점점 추워졌다.

맨몸이 아니라 총과, 실탄, 감시장비들을 매고 가야했기 때문에 근무지에 도착할때는 땀에 흠뻑 젖었다.

그리고 젖은 옷으로 밤새도록 바들바들 떨며 바다바람을 맞아야 했다.

 

일출 후 복귀하면 청소를 해야 했다. 간부의 환경미화 욕심덕에 우리는 하루에 두세번 청소를 해야했다.

쉬는 날은 점점 줄어갔다. 비번인 날이 한달에 하루 이틀 정도밖에 안되는 때도 있었다.

정신이 피폐해지는 느낌이었다. 

명목상 작전에 투입된 것이기 때문에 면회나 외박도 안 됐고, 사람수가 부족하니 휴가도 나가기 힘들었다.

 

우리의 임무는 해안으로 침투하는 간첩을 막는 일이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북으로 보내는 북파공작원들이 침투 훈련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무전기로 북한 사투리라고 생각되는 이상한 말투들이 왔다갔다 하고

머리도 자르지 않고 그을리고 흉터로 가득한 범상치 않은 얼굴을 보고 다들 긴장했다.

1km 밖에서 스노클만 끼고 수영을 해서 우리가 지키는 철책을 침투하는 것을 보고 모두 혀를 내둘렀다.

오리발을 끼고 해안을 뛰어서 철책을 넘어오는건 '존나' 빨랐다.

모두들 자기가 본 것들을 무용담처럼 얘기했다.

한편으로 우리가 여기서 지키고 있는게 큰 도움은 될까 하는 의문들이 들었다.

 

겨울의 바닷바람은 더 차가웠다. 순찰을 돌다보면 몸은 또 흠뻑 젖는다. 근무지에 있다보면 젖은 군복과 군화는 또 우릴 괴롭혔다.

눈이 오면 또 눈을 치워야 했다. 눈에 발이 빠지고, 평소에는 모래에 발이 빠졌다. 무릎은 나날이 안 좋아졌다.

 

가끔 얼어죽은 커다란 한치가 떠내려왔다. 일출 후 철수하며 줏어오면 취사병은 씨발거리며 삶아줬다.

식판 가득 삶은 한치를 쌓아놓고 초장에 찍어먹는것은 가끔 있는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배고팠다. 겨울에는 일출이 늦으니 철수도 늦었다. 8시~9시쯤 아침을 먹고 잤다.

13시에 일어나 점심을 먹었다. 

해가 일찍 지니 저녁은 16시쯤 먹었다.

낮에는 항상 배가 더부룩했다.

하지만 16시 이후 다음날 8시까지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기껏해야 부식 라면이나 빵 하나를 먹으며 밤새도록 근무를 했다. 

다들 새벽의 배고픔 때문에 방법을 강구했다. 난 분유를 사다놓고 타먹기도 했다.

황금마차도 오지 않고, 부식도 나오지 않은 날, 끔찍한 배고픔에 근처 마을에 걸려있던 생선을 훔쳐다 먹은 적도 있다.

정말 군대라는 곳은 융통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한심한 새끼들이 만든 집단이라고 15000번쯤 되뇌였다.

 

해안에서는 여가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남들은 군대가면 축구 많이 한다고 하던데 나는 군대에서 축구한 기억이 많지 않다.

해안 오기 전 중대 100명 풀어놓고 축구공 3개가 박격포처럼 날아다니던 병신같은 전투축구는 생각난다.

내무실엔 TV도 없었다. 볼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미친짓을 많이했다.

작업 나가서 가위바위보 해서 모래에 묻기 라든지...

취사장 청소하다가 가위바위보 해서 짬먹기 라든지...

 

해안은 민가가 멀지 않기 때문에 사고가 많이 난다. (사실 그래서 더 상급부대에서 압박을 한다)

총기 관련 사건도 해안에서 일어나고, 근무 중 이상한 짓을 하다가 걸리는건 적발되는 일도 많고, 뉴스에 나기도 한다.

전설같이 들려 오는 이야기는 근무지에 다방아가씨를 불렀다는 얘기다.

 

또 한해가 흐르고 전역의 해 2005년이 밝았다. 아무도 2005년은 오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리고 봄이 오기 전 병장이 되었다. 지독했던 고참들은 모두 제대했다. 남은 사람들은 친하기도 하고 성격도 좋은 사람들이니 큰 문제도 없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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