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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공비 작전, 해전 등 전투 후기들은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그냥 지극히 평범한 육군 보병의 어느 훈련기이다.

특별한 사건도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다른 누군가의 훈련보다 더 힘들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궁금해하고, 누군가는 공감할 만한 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남긴다.

훈련의 시기는 2003년, 지금으로부터 15년전이다.

수양록의 기록을 보며 기억을 되살려 본다.

 

당시 난 이등병이었다.

자대 배치를 받은 후 아직 뭔지 제대로 파악도 안 되는 시기였다.

자대 배치 후 첫 며칠은 침상에 앉아서 주인을 기다리는 개처럼 훈련 나간 고참들을 기다리는게 일과였다.

처음 하루이틀은 나에 대해 무척 궁금해했고, 딱히 반기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눈치였다.

고참들은 아침을 먹고 어디론가 사라졌고 하루종일 총소리가 들렸다.

(사격 훈련 기간이었다.)

좀 더 지난 후 진지공사라 해서 하루종일 삽질을 하고 흙을 퍼 날랐다.

그리고 10월부턴 앞으로 있을 훈련을 준비한다고 했다.

 

'전투준비태세'는 전쟁이 났을때 부대에 있는 탄약과 전쟁물자를 사용하기 위해 적재하는 과정이다.

군장을 싸고, 실탄을 준비하고, 창고에서 각 부대가 담당한 전투용 물자를 꺼내어 싣는다.

훈련소에선 준비태세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군장을 싸라니 쌌다.

근데 10월달 부터 11월에 있을 큰 훈련에 대비하여 매일같이 전투준비태세를 했다.

큰 훈련은 상급부대에서 각 부대를 평가하는 과정이다. 중간고사, 기말고사와 비슷한 것이다.

그리고 큰 훈련 하나를 해내기 위해서 미리 연습을 하게 된다.

 

요령이 없으니 이등병의 군장은 허술하다. 같은 물품을 넣어도 군장에서 물건들이 꾸역꾸역 다시 내뿜어져 올라온다.

힘으로 밀어넣고 억지로 줄을 땡겨 묶어놓으면 손에 힘이 풀려 바들바들 떨릴 지경이 된다.

이 짓만 해도 전투복이 땀으로 젖는다.

군장을 싸고 총을 들고 우리가 담당한 탄약을 날랐다. 

탄약은 나무 상자에 든 쇳덩어리와 다를 바 없다. 복숭아 상자 3개 쌓아놓은 정도 크기였던것 같다.

그냥 손으로 들고 연병장을 가로질러 오기엔 힘이 달린다.

그래서 들었다가 어깨에 이었다가를 반복하며 왔다.

일주일에 몇번, 많을 떄는 하루에 두번 이 짓을 반복했다.

준비태세가 끝나면 물자를 원위치시키고, 군장을 풀어 관물대를 다시 정리해야했다.

준비태세 하면서 밟고 올라간 침상도 다시 닦아야 했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을 위해 비유를 하자면, 뛰어다니면서 이사짐을 나르는 것과 비슷하다.

 

흙이 묻은 총을 닦고, 돼지기름으로 만든 위장크림을 피부가 아릴때까지 박박 닦아 지우고 나면 하루는 금방 갔다.

어떤 날은 군장을 메고 산을 올라야했다. 

어떤 날은 행군을 해야 했다.

어떤 날은 총을 들고 길 없는 숲을 헤매야 했다.

사실 그 당시에는 왜 하는지, 이게 무슨 과정인지 잘 몰랐었다.

정신 없었고,  하라는 대로 했고, 이유를 궁금해 하지도 않았으며, 궁금하다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훈련이 있기 일주일 전에는 100일 휴가를 나갔다. 4박 5일 중 첫날은 집에 가는데 사라지고, 마지막 날은 부대 복귀에 사라졌다.

3개월만에 만난 친구들은 아직까지 군대에 갈 계획조차 없었기 때문에 군대에 대해 딱히 궁금한 것도 없었고

그저 즐거운 스무살 대학생활에 취해 있었다.

많은 시간이 흐른줄 알았는데 바깥은 하나도 변한게 없었고, 

단지 고등학생 시절 지각을 면하기 위해 헐떡거리며 달렸던 등교길을 뛰었을때 

전혀 힘들지 않아 내 체력이 많이 좋아졌구나 하고 느꼈던 것은 기억이 난다.

 

* 훈련 1일차

휴가 복귀 후 일주일도 훈련 연습이었다. 대간첩 작전을 위한 수색을 위해 산을 오르내리는 연습을 했다.

훈련 전날까지 비슷한 연습들을 했는데 똑같이 연습을 하기 위해 나온 대항군들을 마주치기도 했다.

 

훈련 당일 6시, 기상알람 대신 사이렌이 울려퍼졌다. 그간 수차례 반복한대로 익숙하게 군장을 쌌다.

모 해안소초 병장이 해안철책 절단 흔적을 발견다는 상황이 전파되었다.

(물론 가상의 상황이다.)

 

전투준비태세를 마친 우리들을 60트럭을 태워 어떤 부대 뒷편의 산으로 옮겼다. 

주변의 온 산이 무장한 군인들로 가득했다.

하향식 수색을 위해 높지 않은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대열을 맞춰서 내려왔다.

공백이 생기면 안 되기 때문에 나무와 가시덤불을 해치면서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상공에서는 헬기가 날며 간첩들에게 하는 방송을 했다.

"여러분은 지금 국군에게 포위되었습니다. 투항한다면 목숨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여자의 목소리였고 굉장히 떨리는 목소리였다.

일부러 불안감을 조성하기 위해 떨리는 목소리로 녹음한것 같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산 아래까지 수색하며 내려왔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문득 뒷쪽의 먼발치 능선을 봤을때 몇 명의 사람이 우리와 반대방향으로 산을 넘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전기에는 쟤네가 누구냐, 다른쪽의 아군을 잘 못 본게 아니냐, 이쪽이냐 저쪽이냐 실랑이를 하는 동안

대항군으로 추정되는 그들은 산 너머로 사라졌다.

 

허탕을 치고 막사로 돌아와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우리 거점인 900고지(가명)를 점령하기 위해 올라가야 했다.

군장을 메고 올라가면 숨이 넘어갈듯 차고, 허벅지는 두들겨 맞은듯 아프게 하는 그곳이다.

다행히 1소대 이등병들이 앞에서 퍼진 덕분에 우리는 좀 더 천천히 갈 수 있었다.

이등병 당시에 체력적인 면이 항상 걱정이었는데 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평소보다 천천히 올라왔고, 도착 후에는 할 것은 없었다. 

숙영을 준비하고, 올라가서 사진도 찍으며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실전에서는 이 아래쪽으로 북한군 모 부대가 이동한다는 설명을 듣고 우리는 연습보다 쉬웠던 훈련의 첫째날을 마무리했다.

 

*  훈련 2일차

둘째날 아침은 걱정보다는 개운했다. 하지만 고지를 한번 더 올라야했다. 밥이 없으니 내려가서 밥을 가지고 올라와야 했다.

한개 소대씩 번갈가며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나는 아이스박스만한 보온 국통을 들고 산을 올라와야 했는데 군장 메고 오르기보다 힘들었다.

하루 일과는 밥을 가져오고, 밥을 먹는게 전부였다. (차라리 내려가서 먹고 올라오는게 낫지 않나 싶었다.)

소대 공방 연습을 간단히 하고 하루가 끝났다.

나를 포함한 2개 분대에 다음날 정찰 임무가 주어졌다.

 

* 훈련 3일차

정찰을 위해서 새벽에 먼저 일어나 텐트를 정리하고 고지를 내려왔다. 시간이 많지 않아 꽤 서두르며 내려왔다.

적진 근처로 빨리 이동했다가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힘들것이라며, 

한 고참은 자기는 예전에 힘들어서 헛소리를 했다며 겁을 줬다.

하지만 혹시나 대항군 전차부대 정도라도 발견하면 포상휴가를 받을 수 있다하여 많은 기대를 했다.

산을 넘어 이동을 했고, 목표지점 도착한 후에는 딱히 할게 없었다.

우리가 숨어있던 곳은 대항군 60트럭 한대 외에는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은폐엄폐도 무시한채 판쵸우의로 천막 쳐놓고, 라디오 틀어놓고, 전투 식량 까먹고 잠깐 졸면서 시간을 떼웠다.

나중에 들었는데  우리가 있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에 대항군이 있었다고 한다.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13시쯤 우리도 부대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본대로 돌아가 합류했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졌다. 

행군은 군장을 메고 걷는 것이 아니다. 거의 뛰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행군 역시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군장에 짓눌린 어깨는 잘려나갈 듯 아프다.

행군 중에 비는 점점 더 거세졌고 전투화에도 물이 찼다. 

사실 처음에는 비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군복은 땀에 다 젖기 때문에 시원하게라도 갈 수 있으니 좋은 거라 여겼다.

하지만 비는 그치지도 않았고 쉬지 않고 내렸다.

 

대규모의 병력 이동으로 지나가는 마을마다 시끄러웠다. 

마을의 개들이 모두 짖어대고 전차와 군화발 소리가 가득했다.

한 아주머니가 우산을 쓰고 나와 행군하는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시끄러운 소리에 나와 봤을 것이다.

나는 아주머니가 우리를 보며 하시는 혼잣말을 들었다.

"비라도 그쳐야 덜 힘들텐데..."

 

저녁은 산 속에 있는 모 부대의 차양막에서 비만 겨우 피한채 씻지도 못한 숟가락으로 밥을 먹었다.

몇 시간을 더 걸어 밤 12시가 되었을 때 우리는 숙영지에 도착했다.

비가 많이와 선발대를 보내 텐트를 쳐놓으라고 했지만 준비된 텐트는 단 2동 뿐이었다.

자리도 없었다. 비를 맞으며 숲속에 삽질을 해 겨우 텐트를 쳤다.

바닥에 깔 깔판도 없었다. 

우리는 정찰 뒤에 출발해서 좀 늦게 출발했는데, 먼저 도착한 소대에서 비닐도 다 써버려 우리 것은 없었다.

텐트는 비가 새고 물이 찼다. 하지만 너무나 피곤해 그 상태로라도 빨리 쉬고 싶었다.

하지만 상병은 텐트의 자리를 바꾸자며 짜증을 냈다.

어둠속에서 일병과 나 역시 화가난 상태라 노려보기만 했다.

야삽을 들고 서로를 노려보며 잠시 대치를 하다가 상병이 더 이상 안 될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지 먼저 텐트로 들어갔다.

급박한 상황에서 다들 계급이고 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했다.

부소대장은 우리 물자를 남겨놓지 않은 사실에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빗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비는 쏟아졌다.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 훈련 4일

새벽 불침번을 서야 했는데 사수는 잠깐 나왔다가 들어가서 잤다.

나는 행군탓에 다리가 뼛속까지 아파 주저앉아 끙끙 앓았다.

앉아있다가 잠이 들었고 다음 근무자를 불러냈지만 아무도 나올 생각이 없었다.

난 그냥 들어가서 잤다.

 

아침에 눈을 떴을때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고 모든 것은 젖어 있었다.

텐트와 전투복, 속옷 모든 것이 젖었다. 

군장 속에 비닐로 싸놓았던 옷들도 모두 젖었다.

11월이었고 공기는 차가웠다. 우리는 차라리 눈으로 바뀌어서 훈련이 취소되길 바랐다.

바닥은 모두 진흙이었고 그저 텐트안에서 비를 피하다가 가끔 나와 밥을 받아갔다.

텐트와 모든 사람들은 흙투성이, 모래투성이었고, 딱히 할 일이 없어 밥을 먹고 젖은 자리에 누워있다 잠이 들었다.

 

* 훈련 5일차

전날과 다를 바 없었다. 그저 다들 바들바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감기환자가 생겨 후송을 가기도 했다. 감기라고 거짓말을 하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몸은 멀쩡했다.

하루종일 바들바들 떨고 있지만 딱 후송을 가기 직전 정도만 고통스러웠다.

마른 옷가지나 침낭을 말려준다며 특수 차량이 와서 걷어갔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비가 그치지 않아서 큰 의미는 없었다.

 

* 훈련 6일차

젖은 거지 텐트 생활에 적응할만 하니 출발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그 전의 이틀간 무언가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비 때문에 취소되었다는 얘기만 들었다.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내가 뭘 하러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쫓아갈 뿐이었다.

가다가 소산해서 꼼짝 않고 한 시간여를 숨어있기도 했다.

점심은 숲속에서 전투식량을 먹어야 했는데 방탄모를 타고 빗물이 흘러내려 정확히 밥 안으로 들어갔다.

물에 말아먹는 느낌이었다. 몰래 눈치를 보며 방탄모를 벗고 있는 병장이 부러웠다.

 

어떤 길에서는 대항군 탱크와 마주치기도 했다. 교전 중이라며 숨어있다가 사단본부로 돌아가라고 했다.

더 이상 비를 맞고 잘 수 없으니 사단 본부 건물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었다.

사단 본부의 목욕탕은 시설이 매우 좋았다. 건물도 깨끗하고 관물대와 매트리스도 좋았다. 

여전히 젖은 전투복 채로 잤지만 그래도 편했다. 잠시동안은...

 

* 훈련 7일차

새벽 2시 우리를 깨웠다. 공격 준비를 서둘렀다. 군장을 싸서 나오자 여전히 비는 주룩주룩 쏟아지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계속 걸었다.

첫날 국지도발 했던 그 산에 다시 도착했다. 

그리고 공격을 한다고 어딘가를 걸어서 따라갔지만 내가 누굴잡는지, 적이 어디있는지도, 적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산을 돌아다니며 가끔은 비에 맞아 녹슨 총으로 공포탄을 쏘았다.

이게 끝이 었다. 걷고, 산을 오르는 일. 그리고 나로서는 뭔지 궁금해 할 자격도 시간도 없는 일들.

이게 내가 군인으로서 했던 첫번째 훈련이었다.

 

우리는 훈련 내내 "집에 가고 싶다" 라는 말을 반복했다.

평소에 이 말은 빨리 전역하고 싶다는 말이지만, 훈련 때는 막사에 빨리 복귀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6박 7일간의 훈련을 끝으로 우리는 그리운 집이 되어버린 막사에 돌아갔다.

 

* 훈련 이후

우리는 집에 돌아왔다. 비와 낙엽과 모래 투성이가 된 채로.

군장을 풀었지만 당장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멀쩡한 것이 없었으니.

훈련의 끝은 얼굴에 들러붙어 지워지지 않는 위장크림을 씻어내는 일이다.

그리고 며칠간은 모든 물건들을 털고 빨고 말려야 했다.

 

비는 훈련이 끝나고 거짓말처럼 그쳤다.

한 고비를 넘겼으니 올해는 눈 치우다 보면  금방 지나갈 것이라고 고참들은 말했다.

저들은 떠나겠지. 그리고 난 혹한기 훈련을 넘기고 또 다른 것들을 해야겠지.

군생활 1년 8개월이 남은 시점이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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