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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3년, 그러니까 글쓰는 시점 기준 15년 전에 입대했다. 

군생활이 2년 2개월에서 2년으로 줄어드는 시점이었고, 그래서 난 2년 2주의 군생활을 했다.

강원도의 육군 보병의 기관총사수였다. 

 

제대한지 13년이 된 시점에서 군생활에 관련된 글을 쓸 이유는 딱히 없지만,

내가 PC 통신 하던 시절에는 다양한 군생활에 관련된 얘기들이 있었고,

난 그런 글들을 읽으며 한때는 군인이 되고 싶은 로망도 있었다.

요즘엔 그런 글들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좀 오래됐지만 지극히 평범한 군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아직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그리고 이미 다녀온 사람이라면 인생의 가장 큰 기억으로 자리잡을 추억을 함께 공감하고자 이 글을 쓴다.

 

 

입대한 날은 2003년 7월이었다. 그 당시엔 보충대란 것이 있었다.

보충대에서 입대를 하여 전투복 따위를 받고 3일 정도 머무르다가 추첨을 통해 각 사단 훈련소로 흩어진다.

 

첫 날 함께 온 가족, 친구들과 헤어진 후 멀어지면 이내 분위기는 삭막해진다.

예전에는 모퉁이를 돌면 다짜고짜 오리걸음으로 갔었다고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강당에서 처음엔 웅성거리다가 몇차례 조교들이 "입 다물어!" "조용히 안해!" 고성을 지르면

그 많은 사람들이 한마디도 하지 않는 신비한 장면이 연출됐다.

 

강당에서 "입대를 축하한다, 보충대에 머무는 동안  통제에 잘 따라라" 라는 연설을 중령쯤 되는 사람이 했다.

연설 중간에 "심청이는 어떤 사람이지?" 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졌을때

'효녀' 라는 정답 대신 껄렁껄렁한 한 친구가 "처녀입니다" 대답하고 낄낄댄 것도 잠시,

"너 이새끼 뒤로 따라와" 란 말로 분위기는 정리되고 그 친구는 무대 뒷편으로 사라졌던 기억이 난다.

 

보충대 기억은 단순하다. 밥은 맛이 없었고, 식판은 기름에 찌들어 미끄덩거렸다.

그 이유는 식기 세척용 세제 대신 빨래비누를 줬기 때문이었다.

할일이 없으니 잡담을 하려했고, 그러면 조교들은 소리를 지르며 모포 각을 잡게 시켰다.

밤에 막사 바깥으로 나가면 처음 겪는 어둠이 있었다.

총을 든 기간병들이 나오지 말라며 주의를 줬다. 총과 방탄헬멧이 신기해보였다.

 

며칠 후 국가기관에서 나온 사람들은  금단현상에 시달리는 친구들에게 마약에 관련된 정보를 제공 받는 대신 담배 한대를 제공했다.

헌혈을 했고, 신체검사를 하고 버스에 실려 사단 신병교육대로 갔다. 

 

신병교육은 6주였다. 

난 2002년 고3이었다. 그리고 2003년 대학교 첫 여름방학를 훈련소에서 보냈다. 

장마철도 끝났으니 비도 몇 번 오지 않았다. 

7월의 더위에 항상 땅은 메말라서 걸을 때마다 먼지가 날렸고, 메마른 땅처럼 입도 말랐다.

하지만 식중독 예방을 위해 물은 끓여서 줬다. 물론 식힐 냉장고는 없다.

가끔 맛스타라는 음료수를 주면 다 마시는 걸 넘어서 뚜껑에 묻은 잔여물까지 혀로 핥아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추잡한 장면이지만 항상 당이 부족하고 목이 타니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러고 있었다는게 신기했다.

 

난 동반입대로 친구와 함께 입대했는데, 내무실 자리도 부족해서 한 관물대를 친구와 쓰게 했다.

그 얘기는 잠자리도 1명의 공간을 2명이서 써야 한다는 얘기고, 

무더운 여름 그렇게 부대끼다 보면 짜증내고 싸우는 일은 비일비재해진다.

점점 말이 없어지고 우울증 걸린 듯한 사람들이 한명씩 늘어난다.

결국 짜증내고 오해하고 싸운다.

흔히 보는 풍경이었다. 27살 형에게 싸가지없이 해서 치고 박고 싸운 동기도 있었고,

가장 자주 보는건 동반입대 한 애들끼리 싸우는 경우였다.

 

50여명이 한 소대를 썼고 침상은 4군데로 구분되어 있었다.

관물대 앞에는 빨랫줄이 걸려있었고 걸레보다 더러운 속옷과 전투복이 널려있었다.

교실 1개 정도 크기에 50명의 장정들이 빼곡히 있으니 항상 열기가 후끈거렸다.

머리는 조교가 바리깡을 가지고 3mm 삭발을 했고

머리카락은 빗자루로 털어주며 낄낄거렸다.

아직도 빗자루가 얼굴을 스쳐지나갈때의 찝찝한 냄새가 기억난다.

수통은 변색되고 찌그러져 있고, 화장실은 모기로 들끓었다.

다행히 재래식은 아니었지만 항상 몇군데는 막혀있었다.

자살할까봐 잠금장치가 없었고, 새벽에 화장실에 가면 불침번이 앞에서 지키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힘들었지만 한편으로 또 사람사는 곳이라 일과가 끝나면 잠시나마 동기들과 웃고 떠들 수도 있었다.

대부분의 교육훈련은 산에 만들어진 교육장을 오르내리느라 힘을 썼고,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도 뜨거운 볕 아래서 산을 기어 오르며 각개전투를 한 후에는 흙바닥에 모여앉아

끼 있는 동기에게 노래를 시키거나, 조교 성대모사 같은 짧은 장기자랑을 하며 웃을 수 있는 시간도 있었다.

 

화생방은 가장 끔찍했는데, 가스실을 먼저 들어간 1소대 동기들이 참을만 하다며 웃으며 나왔고,

마음에 들지 않은 교관은 가스실에 캡슐을 태우는 대신 최류탄을 터뜨렸다.

내가 있던 2소대는 안에서 고농도 최류가스에 취해 제식과 군가는 할 수도 없었고 들어간 내내 얼굴을 쥐고 비명을 질러대다가 나왔다.

가스를 날려보내라며 팔을 벌리고 뛰어 갈 때

앞 동기의 코와 입에서는 방독면 끈보다 더 긴 분비물을 고무줄처럼 출렁이며 뛰었다.

 

유격 훈련은 50분 기합 10분 휴식이 지켜져서 꼴에 규정은 지키는 구나 싶었다. 

8시간을 잘 못 한것 없이 기합을 받았고

교관은 몸과 마음이 지친 우리에게 하늘을 보게 하고 엄마 얘기를 끄집어 내어 화생방때 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했다.

살면서 가장 서럽게 울었고 연병장 바닥에 누워서 쳐다봤던 하늘은 구름이 가득했지만 눈부셨다.

훈련소의 행군은 길진 않았지만 탈진한 채 어질어질해서 끝난 후에는 밥과 우유를 게걸스럽게 먹었다.

 

몇 주차였는지 모르겠지만 난 벌점을 많이 받아서 주말에 취사장 청소에 불려갔다.

조교가 정화조 푸는 일을 시키며 "이건 무거워서 팔힘이 좀 있어야 한다" 고 말하기에 

농담으로 "전 못할것 같습니다" 했더니 조교가 싸늘한 눈으로 미친놈 쳐다보듯 쳐다봤다.

고참들이 우리를 농담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동료로 생각치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달은 최초의 순간이었다.

 

취사장  청소를 하다가 한 동기가 튀김을 하고 남은 끓는 기름이 들어있는 솥에 발이 빠졌다.

내가 살면서 들었던 가장 끔찍하고, 고통에 찬, 길고 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동기는 후송을 갔고 그 뒤로 보지 못했다.

항상 짧았던 여름방학은 이상하리만치 느릿느릿 흘러갔다.

 

사회를 떠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한참이나 그곳에 있었던 것 같았고,

함께했던 가족과 친구들은 가물가물 해졌다.

몇 주 앞서온 훈련소 선배들은 뭐가 그리 남기고 싶은지 책상에 훈련 후기를 써놓았고

우린 다음 훈련이 항상 두려웠으니 그것 조차 귀중한 정보가 되어 열심히 읽었다.

몇 명을 제외하고 모두 훈련소를 수료했다.

발에 화상 입은 친구.

담배 피우다 걸린 친구.

일요일에 교회갈 때 가족이 몰래 와서 만나다가 걸린 친구도 있었는데 수료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 돌이켜보면 기껏 몇 주 전에 군대 갔는데 그렇게 까지 해서 만나야 했나 싶기도 하다. 

 

난 우리 사단에서 비교적 편하다는 보병연대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내가 배치받은 연대는 특별하게 자대배치 되는 이등병들이 연대 본부에서 3일간 쉬어가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TV도 봤고, PX서 과자도 사먹었고, 오랜만에 담배도 피웠다.

신병교육대의 식당은 항상 북적이고 후덥지끈했다. 

말을 못 하게 했지만 항상 정신없이 시끄러웠고, 식사줄을 서있는 훈련병들은 먼저 먹는 사람들을 애처럽게 쳐다보니 신경쓰였다.

밥먹을 시간도 짧았다.

하지만 연대 본부의 식당은 여유로웠다. 맨밥만 먹어도 맛있을 정도로 음식도 잘 했다. 음악도 흘러나왔다.

이곳에 계속 있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다.

딱히 하는 것 없이 3일이 훌쩍 지나갔다.

9월 초인데도 이상하리 만치 아침 저녁은 추웠다.

대대를 배치받았다. 내가 가는 곳은 '이상한 나라' 라고 불리울 만큼 낙후된 지역이라 했다.

편한 군생활은 물건너 간 듯 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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