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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짐

 

* 일병

해가 바뀌고 난 일병이 되었다. 다행히 겨울이 심하게 추운 곳은 아니었다.

가끔은 눈이 왔다. 강원도의 눈은 예전에 본적이 있다.

12살때 쯤 친척형의 군 면회를 갔을때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었다.

그 당시에는 훈련소 퇴소식에 부모님이 참가하고, 나라에서 숙소를 잡아주고, 외박을 할 수 있었다.

그 면회외박에 함께 갔었다. 이제 막 이등병이 된 친척형의 훈련소 퇴소 모습을 보았다.

(의장대 공연 비슷한 걸 했다.)

그때 온 세상이 눈으로 덮혀있었다.

 

내가 맞이한 눈은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다. 고참들도 올해는 눈이 많이 오지 않는다 했다.

하지만 한번 내리면 허리까지는 쌓이는 눈이었다.

눈은 눈삽으로 치워야 하지만 졸병에게는 플라스틱으로 된 넓은 눈삽은 주지 않는다.

난 일반삽(공병삽 이라 부름)으로 눈을 펐다.

그러다가 눈속에 숨겨진 바위때문에 삽이 튀어 올랐고 내 입을 때렸다.

앞니가 깨졌고 의무대에 가서 의무병에게 보여주자

의무병도 자신의 깨진 이를 나에게 보여줬다.

"저도 여기 깨졌어요. 그냥 나가서 치료받으세요"

 

얼마 후 일병휴가를 나갔고 하루는 치과에 가야 했다.

일병휴가를 나갔지만 여전히 친구들은 내가 군대에 갔음을 체감하지 못했다.

3개월만에 다시 나왔고, 얘네들은 군대에 가지 않았고, 그저 즐거운 대학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휴가 복귀를 했을 때 나는 기관총사수로 보직이 바뀌었다.

난 기관총을 만져본적이 없었다.

고참에게 대충 배우고 첫 근무를 나갔을때 오발사고가 났다.

공포탄이어서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진술서를 쓰고 이곳저곳 불려다녀야 했다.

다음날 근무를 나갔을때 또 오발사고를 냈다.

고참에게 작동법을 잘 못 배운 탓이었고, 사고 후에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으니....

 

대대장은 한 번만 더 오발사고가 나면 영창을 보내겠다고 했다.

이틀 연속 같은 사람이 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하는 듯 했다.

며칠 후 다른 중대에서 오발사고가 났다.

내 동기였다. 

영창에 갔다고 한다.

안녕...미안하다...

 

눈이 오면 눈을 치우고, 가끔 작업을 했다. 훈련도 몇 번 했는데 워낙 큰 훈련을 하고 난 후라 큰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혹한기 훈련 기간, 눈도 오지 않았고 많이 춥지도 않았다.

내무생활은 그다지 순탄하지는 않았다. 나는 일병으로 많은 부담이 있었고, 후임도 몇 명 들어왔다.

후임들이 대체로 말 잘듣고 빠릿빠릿했다.

하지만 가끔 내가 하지 않은 일로 욕을 먹어야 했다. 그땐 나도 후임들에게 화를 냈다.

뭔가 분위기가 안 좋은 날들이 꽤 많았고, 너덜너덜한 남색 활동복(선임 층이 많이 입었다)과 꼬질꼬질한 주황색 활동복(후임층이 많이 입었다)이 화장실이나 불꺼진 탁구장에 줄지어 서서 '한따까리'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훈련보단 작업하는 날이 많았는데 이 때부터 강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난 어렸을때 부터 군대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훈련을 하는 모습을 멋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날은 삽질을 했고, 커다란 돌을 날라야 하기도 했다.

500명 규모의 정화조에서 쌓은 폐기물들을 퍼내기도 했다.

부대 막사의 보수를 위해 시멘트를 개어 바르고,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용접을 하기도 했다.

총보다는 삽이나 드릴, 오함마가 더 익숙했다. 

내가 하는 노동은 우리가 막사에 살기 위해 필요한 것도 있었지만, 

누군가가 더 높은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하는 일도 꽤 있었다.

소중한 시간이 나라 지키는데 쓰이는게 아니라 누군가를 위한 사역에 동원되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항의할 수도 없었고, 그런 작업들을 하다가 뭔가 잘 못 되면 또 탁구장으로 불려가야했다.

 

작업의 효율성은 전혀 없었다.

연병장의 눈은 60트럭에 장비를 달아 10분이면 치울 수 있었다.

우리는 뒷정리만 하면 되는 거였지만 트럭이 오기 3시간 전부터 삽질을 하고 있어야 했다.

 

사단장님 오신다는 소식에 숲길의 낙엽을 치우라는 병신같은 명령도 있었다.

우리는 며칠을 산속의 낙엽을 치웠고 사단장님은 헬기를 타고 100미터 상공을 지나셨을 뿐 낙엽을 치운 숲길은 들르지 않으셨다.

 

그렇게 한심한 짓들을 하며 시간들은 잘도 흘러갔다. 일병이 끝날 무렵 마지막 전술 훈련을 했다.

행군은 없고 전투 연습만 하는 훈련이었다.

대항군 진영에 침투해서 정찰을 하고, 골짜기와 개울을 뛰어남으며 공격을 위해 고지를 뛰어오르고 하는일을 하며

육체적 고통과 긴장으로 고생했지만 그래도 가장 군인다운 순간으로 기억에 남았다.

 

그 훈련을 끝으로 우리는 해안GOP 투입을 준비했다.

투입을 위한 교육을 하고 이사를 준비하며 힘들다기보다는 귀찮고 지루한 순간들을 보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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